2026-06-30
[제도의 시각] 1.가상자산 과세, 한국이 유독 어려운 이유
가상자산 과세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문제점을 진단하는 목소리는 많지만, 현실적인 해법에 대한 논의는 드물다. 제도파트너스는 법령의 쟁점과 제도적 공백을 실무의 시각으로 짚고, 실질적인 해법을 제안한다.
유례없는 유예
2020년 7월, 가상자산소득에 대해 20%의 세율로 과세한다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이 양경숙 의원의 대표발의로 등장한 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애초 2022년 1월부터 시행되었어야 했을 법이 2023년으로, 2025년으로, 그리고 또 2027년으로 5년간 세 차례 유예되었다. 새로운 과세 항목이 입법 이후 이렇게 반복적으로 유예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5년간 세 차례 유예된 것일까.
미리채움에 익숙해진 우리
OECD는 2004년부터 『조세행정 동향 보고서』(Tax Administration Series)시리즈를 발간하여 세계 각국 세무행정의 주요 트렌드와 우수 사례를 분석하고 있다¹. 한국의 국세청과 홈택스 역시 여러차례 소개된 바 있다. 특히 2024년 보고서에는 편리한 연말정산 서비스의 발전 과정을, 그리고 2025년 보고서에는 홈택스의 미리채움과 모두채움 서비스를 소개했다.
모두채움은 프리랜서, 월급 외의 소득이 있는 직장인 등 소규모 자영업자를 위해 국세청이 수집한 소득자료를 바탕으로 종합소득세 신고서식을 미리 작성해주는 서비스다. 대상자에게는 국세청에서 문자나 카카오톡, 우편으로 안내문을 보낸다. 미리채움 서비스도 비슷하다. 부가가치세나 주식양도소득세 신고 서식 등을 작성할 때 국세청이 수집한 자료를 ‘불러오기’로 간편하게 채울 수 있게 납세자를 도와주는 서비스다. 즉, 미리채움과 모두채움은 국세청이 수집한 자료로 신고항목을 채워줌으로써 서식을 백지부터 작성해야 하는 막막함을 없앴다.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와 편리한 연말정산은 직접 경험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연말정산 시즌이 되면 한 해 동안 사용한 병원비, 교육비, 보험료, 기부금 영수증을 직접 챙겨서 회사에 제출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때문에 ‘연말정산 가짜 영수증 단속’이 해마다 뉴스에 등장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이 보급되고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사용이 활성화되면서 증빙서류의 전산화가 이루어졌다. 전산화된 자료는 국세청의 대량 정보수집을 가능하게 했다. 2006년에 드디어 국세청의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가 출시되면서 직장인들이 영수증을 일일이 모으는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모든 정보를 제공한 건 아니었지만 매년 조회 가능 자료들이 늘어났고 2016년에는 편리한 연말정산이 출시되면서 클릭 몇 번으로 10분 만에 연말정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미리채움, 모두채움, 그리고 편리한 연말정산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제 세법을 잘 몰라도 클릭 몇 번으로 복잡한 종합소득세 신고와 연말정산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불편했던 과거는 어느새 잊혀졌고 현재의 편리함은 당연하게 되었다.
가상자산소득에 대해 과세한다는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이 2020년 11월 조세소위원회로 회부되었다. 국회도서관에 보관된 조세소위원회 회의록에는 그 당시 가상자산소득 과세를 두고 위원들과 정부 측의 깊이 있는 검토의 흔적이 남아 있다. 법리적인 측면에 대한 논의뿐만 아니라 실무적인 방법론에 대한 염려 섞인 의견까지 담겨있다. 소득세법 개정안에 대한 검토를 총괄한 송병철 전문위원은 "국세청은 납세자의 신고납부가 용이하도록 가상자산사업자와 협력하여 과세 인프라를 구축하고 또 홈택스 미리채움서비스 등의 이런 신고납부의 편의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도 같이 추진해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설명했다². 세법에 관해 우리나라에서 최고인 전문가들도 미리채움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높이에 맞는 과세시스템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본 것이다.
미리채움은 미리 알아야
미리채움 서비스의 원리는 단순하다. 국세청이 신고서 작성에 필요한 정보를 미리 수집하여 때가 되면 서식에 맞게 채워주는 것이다. 국세청은 고용주들로부터 원천징수한 급여정보를, 카드사로부터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사용내역을, 그리고 사업자들로부터 전자세금계산서와 온라인 현금영수증 발급내역을 수집한다. 이미 국세청 시스템에 모든 정보가 모여 있으니 국세청이 납세자의 서식도 채워주고 계산도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다.
가상자산 역시 처음에는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거래소로부터 거래정보를 수집해 신고 서식을 채워주고, 미리 계산한 납부세액을 납세자들에게 보여주는 방법이 초기 논의의 그림이었다. 하지만 국세청과 가상자산사업자들이 함께 모여 회의를 거듭할수록, 미리채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가상자산에는 국경이 없다. 같은 비트코인이 한국에서도 거래되고 미국에서도 거래된다. 심지어 국적이 없는 탈중앙화 거래소나 개인지갑을 통해서도 거래된다. 가상자산에 대한 경험이 많은 사용자는 국내거래소, 해외거래소, 탈중앙화 거래소와 개인지갑을 모두 심지어 여러개씩 계좌를 개설하여 거래하기도 한다. 문제는 미리채움을 위해서는 이 모든 정보를 국세청이 사전에 수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네 곳은 각각 전혀 다른 이유로 정보를 완전하게 수집하기 어렵다.
국내거래소의 문제
가장 쉬워 보이는 국내 거래소부터 벽에 부딪혔다. 가상자산이 거래소 간 입출금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비록 2025년 3월에 대체거래소가 출범하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국내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곳은 한국거래소(KRX)가 유일했다. 국내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증권사는 20여곳이 넘어가지만 항상 거래소는 한곳이었다. 하지만 가상자산은 사업자가 모두 저마다 거래소였고 동일한 상품을 서로 다른 가격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일물일가의 법칙이 깨진 곳에는 차익거래의 기회가 발생했고 이는 국내거래소간 빈번한 가상자산 이전거래를 유발했다.
가상자산소득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얼마에 사서 얼마에 팔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현금화했을 것이기에 얼마에 팔았는지는 알기 쉽다. 하지만 거래소 간 이전이 빈번하게 되면 얼마에 샀는지를 알기 위해서 수많은 입출금 거래를 추적하여 해당 가상자산의 구매처를 찾아내야 한다. 이러한 추적을 위해서는 정리된 형태의 묶음 데이터가 아닌 데이터 원본을 수집하는 수밖에 없다. 일자별로, 가상자산 종류별로, 거래의 성격별로 묶은 형태의 데이터가 아닌 원본 거래 데이터를 있는 그대로 국세청이 수집하는 것은 무리다. 비유하자면 법인세를 거두기 위해 한국에 설립된 모든 법인의 회계원장을 수집하는 것과 비슷하다. 세금을 거두기 위해 시작된 서비스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면 배보다 배꼽이 커진다. 이 문제를 어떻게든 우회하기 위해 취득원가 계산방법을 선입선출법에서 이동평균법으로, 이제는 총평균법으로 바꿔가며 수차례 시행령 개정안을 수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차선책으로 타협한 것이지 여전히 명쾌한 해결책을 찾은 것은 아니다.
해외거래소의 문제
국경을 넘어가면 문제는 국세청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으로 넘어간다. 해외 거래소의 거래 정보를 받으려면 그 나라 과세당국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최근 가상자산 과세 관련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CARF(암호화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는 가상자산거래 정보 수집을 위한 국가 간 공조 체제다. CARF의 이행에 동의한 국가들은 통일된 형태로 서로가 관리하는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이루어진 비거주자의 거래정보를 교환하게 된다. 물론 CARF가 시행되면 해외거래소에서 이루어진 한국인들의 거래정보를 수취할 수 있게 되어 국세행정에 많은 도움은 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당연히 여기고 있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외국과의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그 외국에서 가상자산거래소의 정보가 원활하게 수집되어야 한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거래소인 바이낸스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탈중앙화를 표방하며 본점 소재지국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바이낸스는 중국에서 최초 설립 후 일본으로, 몰타로 이전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공식적인 본사를 두지 않는다고 주장해 온 바 있다. 여러 사건을 겪은 후 최근에는 아랍에미리트를 거점으로 삼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OECD에서 2026년 6월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CARF는 3단계에 거쳐 도입될 예정이다. 한국은 2027년, 아랍에미리트는 2028년, 미국은 2029년부터 이행이 예정 되어있다³.
탈중앙화 거래소와 개인지갑의 문제
마지막 갈래는 애초에 국가 간 공조라는 틀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영역이다. 탈중앙화 거래소나 개인지갑을 오가는 거래는 그 정보를 대신 수집해서 넘겨줄 사업자도, 국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거래정보가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그중 납세자의 거래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납세자의 협조가 필요하다.
완벽의 역설
미리채움에 익숙해진 우리의 기대에 맞추려면, 처음부터 매우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설계할 수 밖에 없다. 그러려면 국내거래소, 해외거래소, 탈중앙화 거래소, 개인지갑, 이 네 갈래의 정보를 모두 손에 쥐어야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는 국세청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다섯 해 동안 세 번의 유예를 낳은 것은 어쩌면 그동안 너무 높아진 우리의 눈높이였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면 준비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법이다. 이는 과세가 몇 차례 더 유예 되더라도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가상자산 과세의 실현은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제도파트너스는 거래소와 국세청을 오가며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compliance by design을 원칙에 둔 해법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Team JEDO, 제도파트너스
각주
¹ OECD, Tax Administration Series. 한국 관련 우수 사례는 다음 보고서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 OECD, Tax Administration 2017, p.93, Box 6.9.Mobile app and tax
- OECD, Tax Administration 2024, pp.35-36, Box 2.3.Examples - Supporting withholding processess
- OECD, Tax Administration 2025, p.45, Box 4.1.Examples - Electronic filing; p.66, Box 5.3.Examples - Artificial Intelligence
https://www.oecd.org/en/publications/serials/tax-administration_g1g3154d.html
² 제21대국회, 『제382회 기획재정위원회회의록(조세소위원회) 제2차』, 2020년 11월 12일, 46쪽. 전문위원 송병철 발언.
³ OECD, Jurisdictions Committed to Implementing the Crypto-Asset Reporting Framework (CARF), OECD Global forum on transparency and exchange of information for tax purposes.
https://www.oecd.org/content/dam/oecd/en/networks/global-forum-tax-transparency/commitments-carf.pdf